윤소정의 마지막 무대라하여 더욱 보고 싶었던 연극이었는데.
아-
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.
전반적인 스토리텔링에 집중할 겨를도 없이 배우들의 대사 하나하나에 연연하며 생각의 나래를 펼치다보니 몇몇 주요 장면들을 놓친 아쉬움 빼고는 그야말로 최고의 작품이었다.
무엇보다도 배우들의 연기 실력은-감히 평가한다면-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듯 진리 그 자체였다. 에스메가 곧 윤소정이요, 윤소정이 곧 에스메였다. 나는 배우들의 연기를 매우 꼼꼼하게 지켜보는 편이다. 때로는 대사를 잊어버려 당황스러움을 감추려는 또는 호흡과 제스처가 맞지 않는 배우들의 모습에서도 인간다움과 연민을 느끼고는 하는데. 이 작품은 모. 성숙한 연기와 몇 십년의 숙성된 연륜이 묻어나는 무대여서 그런지 아직도 생각하면 벅참뿐이다.
에이미에서 옥신각신하며 다루는 감성들은 누구나 인생에서 또는 하루에 몇번씩이나 겪어보는 '희노애락'이다. 사랑, 꿈, 성공, 삶, 예술 등 수 많은 주제를 각기 다른 관점에서 조명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. 옳고 그름의 경계선을 그리고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보편적인 스토리 구성이 아니라 양면의 칼날을 보여주듯이 신과 구, 사랑과 이별, 배신과 용서 등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주제들을 엮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. 절대적인 것이 과연 존재할까. 인간의 생각은 변하고, 성숙해지기 나름인데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것도 함께 변하는 것이 아닐까. 연극이 끝나고 든 생각이다.
한국 사회에서 연극이 설 자리는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 본 연극의 뼈대이고, 이는 문명 즉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라 더 빠르고, 자극적인 것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들이 등장 때문이라는 것이다. 당대 최고의 연극배우인 에스메는 이러한 사실을 부인하려하며, 연극이라는 예술로부터 느끼는 자부심과 본인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자존심에 심취해 있는다. 그 대단한 자존심을 놓아버린다는 것은 곧 자신을 놓아버리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. 본인의 정체성을 끝까지 지키려고 하는 그녀의 고집스러우면서 애처로우기까지 해보이는 그런 모습이 그러나 나에게는 참 좋게 비추어졌다. 물론 그 고집이 그녀를 성공과 실패로 이끈 결정적 요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.
짜놓은 각본이긴 하지만, 윤소정과 한국 연극에 대해 소통하는 기분이 들었다. 이것이 바로 연극의 진정한 묘미인데. 쩜쩜쩜. 앞으로 윤소정의 뒤를 이어 서은경 등 다른 연극배우들의 꾸준한 무대 기대해보고 싶다. 아무리 스마트폰이 발전한다 한들 나는 아직까지도 종이신문이 좋은 것 처럼,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연극의 수명도 길었으면 하는 바램이다.
댓글 없음:
댓글 쓰기